공허한 상황
이렇듯 현대인들은왜살아야 하는지, 삶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그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위한 삶인지 의문을
품게 됨으로써12) ‘허무주의’13) 즉의미상실감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허무
주의란 현대인의마음의 병14) 즉,철학적인 병15)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과학기술 진보의 속도와 경쟁력에 압도된 채, 그것이 담보하는
물질적 풍요와 심리적 편암함의 매력 앞에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묻고 탐구하
는 활동을 부담스러워 한다.16) 롤로 메이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모습을텅 빈
느낌, 즉 공허감에 있다고 말하면서 현대인은 텅 비어 있다는 공허감을 안
고 때로는 극심한 무력감에 빠진 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한 그는공허한 상황이나 무력감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마침내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절망감이 뒤따르게 되고 이렇게 되면 인간의 모든 귀중한 능력을
차단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닥쳐올 수 있다.18)라고 경고한다. 찰스 테일러
포스트모던 사회의 전제조건으로 인정되고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삶의 무의미성은 20
세기가 우리에게 넘겨준 정신적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체가 당시 허무주의의 징후
가 도처에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볼 수 있는 눈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탄하였다면, 오늘
날 포스트모던 문화의 허무주의적 성격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허무주의 정서가 일상적으로 보편화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허무주의의 원인과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묻지 않는다. 니체가 오늘의 우리를 꿰뚫어 보듯 예언하였던 것
처럼,현대적 인간은 때로는 이 가치를 그리고 때로는 저 가치를 시험적으로 믿다가 곧 포기
하지않는가 만약 우리가남겨진 가치들과 포기된 가치들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질수록 가치
들에 대한 공허함과 빈곤을 더욱 더 강하게 느낀다면, 니체가 예언한 가치들의 무가치성과
무의미성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이다. 허무주의의 일상화, 이것은 20세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시대적 도전이다. 이진우,「21세기와 허무주의의 도전」
(Charles Taylor) 역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세 가지 불안 요인으로 삶의
의미 상실(도덕적 지평들의 실종)과 만연하는 도구적 이성 앞에서 소멸하는
삶의 목표들, 자유ㆍ자율권의 상실 등을 언급하고 있다.19) 이러한 삶의 의미
상실은 곧 현대인들로 하여금 마음의 병을 불러 오게 되고 이러한 마음의 병
은 현대의 약물치료나 정신분석으로는 그 한계가 있다.